◈*국내여행*◈

진주성 촉석루

설렘. 2024. 1. 9. 23:36

 

진주성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이룬 곳이다. 당시 진주는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 지방을 지키는 길목이어서 진주성을 두고 조선과 왜의 다툼이 매우 치열하였다. 곧 조선 선조 25년(1592) 10월에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1554∼1592)과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가 진주성을 지키면서 왜군 2만명을 격퇴하였다. 하지만 다음해 6월에는 왜군 4만 여명이 진주성을 공격하였는데,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1537∼1593)과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1532∼1593) 등이 성 안의 모든 주민과 함께 성을 지키려고 하였다가 끝내 죽임을 당하였다.

현재 내수문(內水門) · 외수문(外水門) · 암문 · 장대(將臺) · 포루(砲樓) · 촉석루(矗石樓) · 서문 · 내북문(內北門) · 함옥헌(涵玉軒) · 진남루(鎭南樓) · 산성사(山城寺) · 창렬사(彰烈祠) · 충민사(忠愍祠) · 화약고 · 관덕당(觀德堂) · 공신당(拱辰堂) · 포정사(布政司) · 군기고 · 중영궁(中營宮) 등이 자리하고 있다.

 

촉석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666. 정면 5칸, 측면 4칸. 남강(南江)의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어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다.

1241년(고종 28)에 창건하여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1365년(공민왕 14)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25년(영조 1) 목사 안극효(安克孝)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중수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에 재건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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