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보은군 장안면 우당고택-말티재전망대

설렘. 2026. 5. 3. 22:42

[우당고택] 134칸 저택!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큰 개울을 이루는데, 개울 중간에 돌과 흙이 모여 삼각주를 이루니 배의 형국 같은 섬이 되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중앙에 엄청나게 큰 기와집이 있으니 여기가 인근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다. 또한 이웃의 영재들을 뽑아 사비를 들여 교육시킨 선각자의 집으로 소문난 선(宣)씨 댁이다.

1919년에서 1921년 사이에 당대 제일의 목수들을 가려 뽑아 후하게 대접하면서 이상형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 요긴하게 이용될 공간이 집안에 망라되도록 설계하였다. 이 시기에는 개화의 물결을 타고 이른바 개량식 한옥의 구조가 시험되던 때였다.

그래서 재래식 한옥으로 질박하게 짓기보다는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해 본 것이다. 이 집은 그런 시대적인 배경에서 특성 있게 지어졌으므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80년에 큰물이 져서 일대가 침수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에 돌각담들이 무너져서 아늑하며 유현하던 분위기는 많이 흩어지게 되었다. 대문 맞은편에 돌각담을 두른 일곽이 있고 그 안에 여러 채의 부속건물들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무너져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대문은 솟을대문이고 행랑채가 좌우로 섰다. 대문간까지 합쳐 단칸통의 32칸 규모이다. 행랑채는 여러 굽이 꺾이는데 그 끝은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채에 이어진다. 중문은 솟을삼문형이다. 사랑채는 남향하였고 무사석같이 다듬은 세벌대 위에 자리잡았다.

평면은 H자형의 2칸통인데 앞, 뒤퇴가 있어 더욱 넓은 공간이 되었다. 기둥은 퇴기둥이 둥근 원주(圓柱)이고, 고주들은 방주(方柱)이다. 퇴기둥의 주초는 화강암을 다듬은 팔각이다.

이런 구조는 보통의 사랑채에서는 보기 드물다. 처마는 홑처마이나 서까래가 길어서 처마 깊이는 상당히 깊다. 안채는 사랑채의 서쪽에 있으면서 서향하였다. 무사석 두벌대 위에 자리 잡았는데 평면은 역시 H자형이다.

중심은 네 칸의 대청이다. 이 대청에서 앞퇴와 뒤편 쪽마루로 나서면 어떤 방으로도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대청 좌우의 방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부엌도 아주 넓은 공간을 차지하였는데 머리 위로 다락이 시설되어 있다. 역시 홑처마이며 처마깊이는 깊다.

사당채 일곽은 뚝 떨어진 자리에 있다. 낮은 담장을 두르고 삼문을 열어 출입하게 하였다. 사당은 세 칸이고 옆에 재실 세 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곳곳에 붉은 벽돌과 시멘트를 쓰고 벽체는 외식에 따라 하얗게 분벽(粉壁)하여 옛집에서 느끼는 따뜻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다음백과)

 

 

 

 

 

전국 지역마다 항아리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 고택 입구에 지역별 항아리가 전시 되어 있습니다.

 

솟을대문!

아주 넓은 마당을 지나 사랑채 들어가는 문!

사랑채! 사랑채도 역시 넓은 마당!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합니다.(工 자형 건물)

 

 

 

물확인듯 한데 의자를  함께 만들어 둔 이유가 뭘까 궁금 합니다.

 

우물

사랑채 건너 토석담 곁을 한참 지나  안채 들어가는 중.......집터가 굉장히 넓답니다.

 

안채에도 후손이 살고 있어요.(工자형 건물) 된장 ,간장 등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네요

 

안채 건물 뒷편

 

 

 

[말티재]

 

'말티고개'라는 이름은 속리산 국립공원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고개로, 조선 세조가 피부병으로 요양차 속리산에 행차할때, 험준한 이 고개에 다다라 타고왔던 어연에서 내려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고개 이름의 유래다. 또한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고개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라는 이름유래도 전해지고 있다.
말티고개를 오르는 갈은 자전거, 바이크 동호인들 사이에서 열두굽이 와인딩 코스로 유명하다.말티재 전망대에 올라가면 열두굽이 말티고개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보은군)

 

 

백두대간속리산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