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함라 삼부잣집(조해영 가옥. 이배원가옥. 김병순(김안균) 고택)함열향교

설렘. 2024. 7. 17. 22:08

함라’ 명칭의 유래와 삼부자집
 
‘함라’라는 명칭은 이곳의 주산인 함라산에서 취한 것으로 전해지며 홍길동전의 작자로 유명한 허균이 1611년(광해군3)에 함열로 귀양을 와 유배되어 있는 동안 시가(詩歌)를 96권으로 묶은 『성수시화(惺#21471;詩話)』등 여러 작품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뒤의 함라산을 주산으로 하여 그 옆으로 부를 가져온다는 길상(吉祥)의 의미로 알려진 소가 누워 있는 형세에서 따온 와우산이 마을 전체를 싸고 있고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일찍이 부농촌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만석꾼 함라 삼부자집 형태는  조선 말기 양반들이 살던 집의 형식을 기본으로 건축했으나 일본식이 가미 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 전통적 상류 가옥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현대식으로 거실 침실 구분 사랑채와 안채 가 이어지는 통로가 있고  집을 빙 돌아가며  복도를 두르고 유리문도 달려 있다  
 
 

 

조해영 가옥 대문채
대지 4천여평 방 90칸 규모 4대에 걸쳐 지었으며 가족 40여명과 일하는 사람 10여명이 살았던 대저택 이었다함
 

사랑채

별채 앞 연못도 있음(집 마당에 연못이 2개 )

별채 - 지붕이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일본식 건물이다

궁궐 에나 있을법한 꽃담이 있다

 

투어 중 소나기가 엄청 내리는데 처마 아래 서서 빗소리 들으니 운치있고 좋다

대문 옆 탱자나무가 이 집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안채 터

왼쪽 새방채와 오른쪽 고방

이배원 가옥 
임피출신. 웅포 가는길에 함라 주막에서 하룻밤 머물던 중 주막집 아주머니 권유로 누룩장사 시작 웅포나루에서 쌀을 모아 한양에 내다 팔며 부를 쌓았는데 장사를 하고 받은 엽전이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았으며 집안 곳간이 엽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함
 

원형 그대로의 토석담이 참 멋스럽다

평소 개방하지 않는 고택인데 마침 김병순의 손자를 만나 집안 구석구석 돌아 다니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감사감사)
 

김병순 고택
99칸 188평의  대 가옥 2천3백18평 
백두산 소나무 사용 하여 집 지음 
 

전돌 담장

대문 들어서면 바로 이 공간이 나오는데 그 옆에는 문지기방이 따로 있었다

김병순의 아들 김안균

문지기 방 옆에도 여러개의 방이 있다

바느질 하던 사람들이 머물렀던 집

 

안방 마당과 사랑방 마당 사이에 있는 중문

 

사랑방- 주련을 걸어놨네 그 내용도 궁금

누마루 넓이도 예사롭지 않아요

향나무 수령이 아주 오래 되었을것 같아요 

사랑채 뒷편

사진 왼편 사랑채 /오른편 안채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가운데 벽을 만들어 안채와 사랑채가 서로 보이지 않도록 했다

헛간(현재 김병순님 손자분이 거주 하고 있다) 이 집안에 우물이 다섯개나 있었다함

왼쪽 침방 오른쪽 안채

안채

함라마을의 돌담길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주택인데도 담장이 높은 점이 특징이다.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이다. 그 밖에도 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이 섞여 있다. 담장 일부는 거푸집을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 흙과 짚을 혼합하여 축조되었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인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마을의 건축물은 새마을운동 당시 상당 부분이 신축 또는 개축된 것으로 시도민속자료 제 23호 ‘김안균가옥’ 등의 지정문화재가 마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차순덕 가옥의 담장은 거푸집을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흙과 짚을 혼합하여 축조한 보기드문 전통적인 방식으로 축조되어 있어 눈에 띈다. 전통가옥들과 마을 한편에 자리한 문화재자료 제85호 ‘함열향교대성전’은 전통마을로서의 품위를 더해주고 있으며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해온 묵은 돌담길은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다.(익산시)

"토석담 돌담" 이 너무 졍겹고 아름답다 (등록문화재)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