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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최초 사액서원] -소수박물관-선비촌( 영주시)

설렘. 2024. 10. 19. 14:11

 

 

소수서원(최초 사액서원)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말 유학자 안향의 연고지에 사묘를 세워 안향의 위패를 봉안했다. 안향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왔고 후일 조선건국의 주도계층인 신진사대부의 형성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 다음 해에는 유생들을 교육시킬 학사를 건립하여 소수서원의 전신이되는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창건되었다. 서원의 명칭인 백운동은 주자가 세운 여산의 백록동서원을 본떠 지은것으로 알려져있다.

백운동서원은 부지는 원래 통일신라때 사찰인 숙수사(宿水寺)가 자리한 곳이었다. 숙수사의 법통이 어떻게 끊겼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안향이 이 숙수사에서 수학하였고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안향의 아들과 손자까지 이 숙수사에서 수학했다고 알려져있어 적어도 고려말까지는 존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원 내에는 아직도 옛 숙수사의 흔적이나 석조물이 남아있고 통일신라 양식의 청동불상 25구가 출토되기도 했다.

 

 

 

 

통일신라때 것으로 깃발에 불화를 그려 걸던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던 석재기둥이다.

취한대(이황이 송백과 대나무를 심고 지은 이름)

경렴정(퇴계이황 글씨)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 하던 장

 일신재(日新齋교수들 사무실겸 숙소) 직방재(直方齋 원장의 직무실겸 숙)

일영대 (해시계를 장치했던 대)

 

*소수 박물관으로 이동

국내 유일의 유교박물관 소수박물관 유교와 관련된 전통문화 유산을 체계화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사원으로 유교의 이상을 간직한 소수서원을 통하여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공간

 

신부가 결혼할때 입던 활옷(가운데)과 녹색 녹원삼(왼) 과 신랑이 결혼할때 입었던 단령(오른쪽)

원래 명칭은 백운동서원이었으나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임 중 조정에 건의하여 명종왕이 친필로 사액을 내리면서 소수서원이라 했

 

*선비촌 으로 이동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는 순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였던 회헌 안향 선생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선비촌은 선비의 정신과 태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건립되었습니다. 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며 그들의 정신을 담은 수신제가(修身薺家), 입신양명(立身 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의 4가지 구역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마을 공동체 형태로 구성하여 옛 영주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각 가옥별로 거주했던 사람들의 신분에 맞는 가옥 규모에 여러 가구와 생활도구를 전시하였으며, 선비의 일생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직·간접체험 공간을 제공하였습니다.

 

 

두암고택 사랑채

 

두암고택 안채 

인동장씨 종택 (왼쪽에 사당이 있음)

인동장씨 고택에 남아있는 가마인 가마 자체도 무거워 보인다